
페루의 마라토너 크리스티안 파체코가 22달러짜리 저가 전자시계만 차고 국제대회 우승을 차지해 화제가 되고 있다. 그는 지난 1일 열린 멕시코시티 마라톤에서 카시오의 F-91 모델을 착용한 채 2시간 10분 3초의 기록으로 결승선을 통과했다.
육상 전문 매체 러너스 월드에 따르면 이 시계에는 GPS나 심박수, 페이스 측정 같은 스마트워치의 기본 기능이 전혀 없다. 스톱워치조차 59분 59초까지만 잴 수 있어 완주 기록을 직접 측정하는 것도 불가능한 수준이다.
파체코가 굳이 이런 저가 시계를 택한 이유는 기기 데이터보다 자신의 몸이 익힌 페이스 감각을 믿기 위해서였다. 그는 경기 후 코스가 매우 복잡했지만 충분히 분석했다며, 32㎞ 지점부터 이어진 급경사와 고도 탓에 다리 힘이 빠졌을 때도 훈련으로 다져진 감각을 유지하려 애썼다고 말했다. 그는 이번 우승으로 상금 5만 달러를 받았는데, 공교롭게도 부상으로는 고가의 스마트워치가 주어졌다.
최근 마라톤계에서는 스마트워치 의존도를 낮추고 몸의 감각에 집중하려는 선수들이 늘어나는 추세다. 데이터에 지나치게 기대다가 경기 흐름과 밸런스가 무너진 사례가 잇따르면서다. 실제로 상당수 엘리트 선수는 최신 고급 기종 대신 가볍고 대중적인 스마트워치를 선택하고 있다.
호주 매체 라이프 해커에 따르면 지난 4월 런던 마라톤에서 인류 최초로 2시간 벽을 깬 사바스티안 사웨는 가민 포러너 55를, 2위 요미프 케젤차는 코로스 페이스 3를, 3위 제이컵 키플리모는 삼성 갤럭시 워치 8을 착용하고 뛰었다. 이들 제품 모두 최신 프리미엄 라인이 아닌 보급형에 가깝다는 공통점이 있다.
전문가들은 스마트워치 기능에 지나치게 의존하기보다 스스로 몸 상태와 페이스를 조절하는 능력이 결국 경기력 유지에 더 중요하다고 지적한다. 파체코의 사례는 첨단 장비가 넘쳐나는 시대에도 훈련으로 다져진 감각이 여전히 경쟁력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